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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화란게 무엇인가요?정확하게 알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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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1건 조회 1,0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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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화가요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졌따는데--
더 정확한 정보를 얻고싶어요~!
그리고 캔버스화를 처음으로 생산한 회사가 어느회사인지도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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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익명 작성일

< 또 다른 성공을 꿈꾸는 산책 >
  오늘날의 스니커즈화를 최초로 만들어 낸 회사는 스트라이드 라이트 사다. 1917년, 전신인 ‘US 러버’가 캔버스 천에 녹힌 고무를 입혀 신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케즈’라고 이름붙여 주었다. 조용한 인기는 소리없이 퍼져 나갔다. 가벼울 뿐만 아니라 걸어도 발소리가 적다고 애용자들이 ‘스니커즈’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조깅과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한때 전성기를 맞는 듯 했으나 ‘승리의 여신 ― 나이키’와 ‘아프리카 가젤 ― 리복’(표범과 포유동물의 이름에서 따옴)의 서슬에 눌려 그대로 스러지나 싶었다. 하지만 소비자 심리의 변화와 경기의 흐름에 먼저 주목한 케즈의 스탭들에 의해, 저가격과 이른바 ‘Anti- Fashion’ 경향으로 틴에이저의 캐주얼 감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이 되었다.캘리포니아의 고급 해변마을과 맨해튼 소호 가에서 회생하기 시작,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키며 대성공을 이루었다. 브랜드 익스텐션이 아닌 타깃 익스텐션이라는 과감한 전략. 또 한 번 정확하게 맥을 짚은 케즈다운 성공이 될 지 외지를 뒤적이다 ‘케즈’가 눈에 띄면 꼭 한 번쯤 눈여겨 살펴보시길.

< 나이키에 무너진 한국, 저항하는 케즈 >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중고생 시절을 보낸 이들은 이른바 ‘비비화(BB靴)’를 기억할 것이다. 하얀 캔버스 천에 하얗거나 까만 고무 밑창을 댄 운동화이다. 이때의 측은한 문화 획일화시대(지금도 많이 나아진 수준은 아니지만)를 상징하듯, 운동화 고무 뒷꿈치 한 가운데에 예외없이 다른 고무를 붙여 상표를 새겨 놓았다. 이 운동화가 바로 ‘케즈’의 한국형 복제품들이었다. 우리에게 비비화라 통칭된 이 캔버스 운동화는 당시 중고생들의 거의 모든 동선(動線)을 함께 했었다. 학교로, 운동장으로, 유치짬뽕 수준의 미팅이 이루어지는 분식점으로….
  그러다 1980년대 초반부터 나이키와 프로스펙스가 주도한 본격 브랜드 스포츠화의 대폭격이 시작됐다. 브랜드와 복제품 브랜드들이 비비화를 한국 시장에서 일거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종주국에서는 어땠을까. 미국 ‘스트라이드 라이트’(The Stride Rite Corporation) 사의 ‘Keds’. 이것이 오리지날인데 케즈는 우리 눈에 비비화로 익었던 그 디자인 그대로 건재했다. 더욱이 나이키, 리복, LA Gear 등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3대 골리앗 브랜드와 함께 어울리며, 미국내 4대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가 부르는, 아니 불렀던 비비화를 ‘스니커즈(Sneakers)’라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니 ‘고무 밑창을 달은 운동화’로 되어 있다. “소리가 나지 않는 데서”라는 주(注)도 달려 있는데, 그리고보니 ‘Sneak’라는 단어가 살금살금 움직인다는 뜻이 아닌가. 캔버스 운동화의 속성이 정확하고 재미있게 담긴 애칭이다. 우리의 옛 ‘중딩’, ‘고딩’ 선배들이 이 운동화를 왜 비비화라 불렀는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스트라이드 라이츠 사가 케즈라는 고무 라벨 로고를 달아놓은 자리에 우리의 어느 캔버스화 모방품 제조회사가 ‘BB’라는 고무 로고 라벨을 붙여놓은 것이 시작이었을 것 같다.
  우리에게 한 때 풍미하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 어디 한두 개이겠냐만은 이 캔버스화도 정작 본토에선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데, 우리에겐 촌스럽고 촌스런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하긴 해외에선 불멸의 최고급 브랜드들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한때의 유행품화되면서 줄줄이 순례되듯 사라지는 양상이니….
  그럼, 첨단 스포츠화와 현란한 스타일리시화의 화려한 등장과 격렬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케즈의 캔버스화는 생존과 번식을 거듭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미국인의 몸에 밴 합리주의적 사고와 ‘새로 나오는 것은 나오는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잔뿌리가 무성히 박힌 그들의 개성의식 혹은 합리성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제품개발과 판촉활동을 꾸준히 펼쳐 온 광고주와 광고회사의 ‘똘똘한 다윗 만들기’가 아닐까 싶다.

 1960년대 미국의 캔버스 스니커즈화 부문은 3개 브랜드가 할거하고 있었다. 별모양의 디자인 포인트가 워드마크에 새겨진 것으로 유명한 ‘컨버스’ 브랜드와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PFF’라는 브랜드, 그리고 케즈였다. 1980년 중반부터 메사추세츠주의 컨버스사가 3가지(‘차크’, ‘테라’, ‘올스타’) 브랜드를 개발,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입하며 캔버스 스니커즈화의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었다. 케즈는 이때를(정확히 이때의 ‘붐이 일어날 조짐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캔버스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시킬줄 아는 재주였다.
  심플함과 가벼운 마음, 즉 ‘편안함’을 제품에서 광고까지 관통시킨 것이었다. 마침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인의 의식은 ‘척하는’ 풍조를 버리기 시작했다. 호경기의 퇴조도 한 몫한 것이다. 고가의 스포츠 슈즈, 패션 슈즈에 대한 심리적 반발이 거세졌다. 마치 IMF를 맞은 한국인처럼 옛날의 심플함과 마음 편한 물건들에게 향수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광고도 화려한 한 순간이 아닌 일상의 한때를 소재로 삼았다.
 
 스니커즈 시장에 뛰어든 나이키와 LA Gear의 공격은 역시 공포였다.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스포츠화 시장에서 해왔던 노하우대로 스니커즈 슈즈에도 성능과 스타일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들의 엄청난 기업력과 광고집행 능력은 늘 거센만큼 반향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케즈는 여성집중 전략으로 맞섰다. 케즈의 70% 매출이 여성고객, 그 대부분은 틴에이저가 소비해주는 것으로도 케즈 쪽의 전략이 더 성공적임이 예감되고 있었다. 이것은 스니커즈화에서의 직접적인 경쟁사인 컨버스의 ‘차크’라는 브랜드와도 뚜렷하게 차별화되었다. 또 무엇보다 메인 타깃을 선점해 간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으로 보면 나이키와 LA Gear의 공격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것이었다.
  마케팅을 담당했다가 케즈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로 합류한 바바라 스코트라는 사람이 있었다. 케즈를 패션 아이템으로 리포지셔닝하자고 제안해 대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그녀가 캠페인 진행중에 언급한 말이다.
  “1988년까지의 조사결과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대단히, 그리고 여전히 호의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내 재주는 스니커즈 본연의 편안한 느낌과 소비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강화해낸 워드 ― “좋은 느낌”을 뽑아내는 정도에 쏟으면 된 것이다. 소비자들이 실제 이상의 ‘좋은 느낌’을 갖는 심리효과를 기대했는데 나의 소비자는 내가 펼친 재주를 통해 그런 기분을 가져 주었다.”
  이쯤되면 아예 제품과 인식의 계단을 없애는 정도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트까지 해냈다는 말이다. 여기에 가격도 ‘편안한 느낌’ 그대로 책정했다. 나이키, 리복, LA Gear의 가죽 스니커즈화가 평균 60불 이상이었다. 케즈는 20불에 불과했다. 커뮤니케이션과 제품까지 다시, 소비자가 인식하고 있는 바에까지 어떠한 단층도 허용치 않는 전술의 힘을 새겨보아야 하겠다.
 케즈는 계속해서 제품과 소비자만을 주인공으로 어깨에 힘을 있는 대로 뺀 채, 편안한 광고를 일관되게 만들어 나갔다. 반대로 화려한 디자인과 크리에이터들의 재주가 넘치는 듯한 광고로 일관했던 LA Gear는 가장 힘겨워했다. 매출은 급속히 감소해 버렸다. 그리고 그 하락곡선은 끝내 다시 솟구쳐 오르지 못하더니,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브랜드 신세까지 되고 만다. 나이키만이 스니커즈 슈즈에서 보위, 잭슨 등 빅 모델의 강력한 광고와, 업계 1위라는 여러 할로 이펙트(halo-effect)를 통해 축성해가고 있었다. 기발한 ‘재주’ 자랑으로 광고 표현의 세계를 주름잡아가는 나이키로서는 ‘야코 죽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위 리복도 오랫동안 하향성 매출 곡선의 나비춤을 추고 있다. 고객들은 LA Gear, 나이키, 리복이 판단해버린 그 훨씬 이상으로 순수하고 편안한, 그리고 합리적 가격의 신발로 바꿔신어가고 있었다. 케즈만이 이 흐름을 가장 먼저 짚었다. 케즈 크리에이터만이 어디에다 ‘재주’를 써야 하는지 가장 잘 알았던 것이다.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로 감사할 때 참고해주세요.

200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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