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역사좀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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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고대사의 전모는 수수께끼로 묻혀 있으나, 산아구스틴(마그달레나강 상류)의 유적군(遺 蹟 群 ) 및 1968년 5월에 신축된 황금미술관에 소장된 1만 점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황금제품 등이 눈길을 끈다. 가장 오래된 문화는 산아구스틴 지역에서 태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2세기 무렵의 북부 타이로나문화와 현재의 산타페데보고타 주변의 치브차(Chibcha )문화를 비롯해서 여러 지방문화가 발전하였다. 에스파냐인(人 )이 1536년 처음으로 콜롬비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치브차족(族 )은 120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에스파냐는 1536~1538년에 걸쳐 치브차족을 정복하고 현재의 산타페데보고타에 산타페요새를 구축하였다. 그후에 에스파냐인의 식민이 시작되고, 식민지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17세기 무렵부터 18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으로서 흑인이 이입(移 入 )되었다. 한편 식민지에 대한 에스파냐 본국의 가혹한 지배는 식민지 주민의 불만을 격화시켜 일찍이 1780~1781년 사이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9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뒤덮은 민족해방운동에서 시몬 볼리바르의 지도를 받은 콜롬비아 주민은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였다.
1819년에는 에스파냐군(軍 )을 산타페데보고타 근교에서 격파하고, 현재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3국을 포함한 그란(大 )콜롬비아공화국이 결성되었다. 1830년 그란콜롬비아공화국이 해체된 후 콜롬비아는 누에바그라나다라고 불렸다가 1886년의 헌법에서 콜롬비아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이 해방투쟁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대지주계급이었다. 이 지주계급과 19세기 말부터 침입하기 시작한 외국자본이 결부되어 콜롬비아의 사회·경제적 발전은 뒤틀려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은 1903년의 파나마 지역의 독립이었다. 이곳에 운하(運 河 )를 만들면 큰 이익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던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와 교섭을 하였으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 그때에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콜롬비아 정부보다도 조건을 완화해서 파나마에서의 운하공사를 미국에 허용하였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는 얼마 안 되는 배상금으로 미국과 타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정권교체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후 양 정당간의 분쟁이 격화되어 드디어 1948년에는 내전(內 戰 )을 일으켜 한때 군사독재제가 수립되었다. 이 군사독재제는 1957년 보수·자유 양당의 정치휴전으로 완화되고, 이후 4년마다 양당에서 정권을 교체하고 각료·국회의석 등은 절반씩 차지한다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정치휴전은 1974년의 선거에서 자유당이 대승함으로써 같은해 8월 파스트라나 보수당 정권을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 1974년과 1978년 2회 연속으로 자유당 정부가 계속되고, 이후 1982년 보수당 정부, 1986년, 1990년, 1994년 자유당 정부, 1998년 보수당 정부로 이어지다가,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무소속(자유당계열)의 우리베 후보가 당선되었고 2006년 재선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콜롬비아의 역사 (두산백과) 2018.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