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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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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N9fA683 댓글 0건 조회 3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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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465년 북위의 문성제 탁발준이 사망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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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황제의 죽음이 너무도 슬펐던 한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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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황제의 옷과 물품들을 태우는 자리에서,


자신도 황제를 따르겠다며, 그대로 불길 속으로 돌진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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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그녀를 막았지만,


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한 여인은 바로 혼절해버리고 말았어


사랑했던 정인의 죽음을 너무도 슬퍼하는 비련의 여인,


하지만 타고 있었던 것은,


황제의 유품들만이 아니었으며,


그녀의 가슴 속에 권력을 향한 '욕망의 불꽃' 또한 그때 이미 훨훨 타오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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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성제의 뒤를 이은 헌문제와 또 그 뒤를 이은 효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북위 조정에서 매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문명태황태후' 즉  '풍태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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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나라의 후손


풍태후는 태어날때부터 황족의 피가 흐르는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북연의 황제 풍홍의 손녀였어


하지만 이러한 고귀한 혈통이 곧 그녀의 인생을 평탄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였는데,


그녀의 아버지였던 풍랑은 자신의 어머니가 황후에서 폐위 되면서 북연을 떠나 북위로 망명하는 망명객이 되었어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어


왜냐하면 북연은 얼마 못가 북위에게 멸망하였고,


그 마지막 황제 풍흥은 고구려로 망명하였는데,


장수왕의 통치 아래 강대하기 그지 없었던 고구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의 망명을 허락하기는 하였지만,


풍흥을 박대 하였고,

* 단 풍흥의 태도도 문제가 있었는데, 망명객 주제에 여전히 황제처럼 명하고 행동하였다고 하니, 전성기를 달리던 고구려 장수왕의 입장에서 아니꼽게 보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야, 그리고 이런 것을 참아주지 않은 장수왕은 풍흥의 아들을 인질로 잡아서 확실한 복종을 요구하였지


이에 분노한 풍흥은 '유송'으로 다시 망명을 시도 하였는데,


이 정보를 입수한 장수왕은 풍홍은 물론 함께 망명한 그의 일족 10여명을 몰살하였어


이에 비해 사전에 북위에 망명하여 있던 풍랑은 서군공에 봉해지고,


왕씨성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여 귀여운 딸아이도 낳고(* 북연의 멸망-436년 풍태후의 출생- 442년)  그래도 잘 사는 듯 싶었지만,


멸망한 나라의 황족의 운명이란 언제나 바람 앞의 촛불에 다름 아니었어


북위 역시 자신들의 멸망시킨 북연의 황족인 그를 늘 의심하고 감시하였는데,


이런 와중에 그와 함께 북위에 망명했던 동생이 이를 참지 못하고 연연으로 망명하여 버리자,


북위의 황제 태무제는 옛 북연의 남자 황족들을 모두 몰살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풍랑 또한 이때 처형 당하는 것으로 그 최후를 맞이하고,


그 어린 딸 또한 노비의 신분으로 전락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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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가 되기까지


그리고 노비가 된 그녀는 태무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 좌소의 고모에게 분배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좌소의는 그녀와 같은 북연출신으로 이 멸망한 나라의 황족에 대해서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였고,


그녀에게 궁중예법과 절도, 지식 등을 가르쳐주었는데,


이러한 좌소의에 도움 또한 있었지만,


그녀 또한 빼어나게 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매우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던 것이,


그 살벌한 세상에서 그녀가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


일세의 정복군주였던 북위의 태무제 또한 종애라는 신하에 의해 살해당하였고,


그 종애 또한 육려와 원하라는 인물에게 살해당하는 혼란의 과정을 거친 이후,


태무제의 손자 탁발준이 즉위 하였는데,


끈 떨어진 신세가 된 선황의 후궁 좌소의는 새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이쁘장한 소녀로 성장한 풍씨녀를 바쳤고,


탁발준 또한 그녀의 외모에 단 번에 반하여 귀인에 봉하였는데,


이때 탁발준의 나이는 14살 풍씨녀의 나이는 11살이었어


* 그리고 3년 후 탁발준은 풍씨녀를 황후로 책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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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준은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즉위하게 되었지만,


유능한 황제가 되었고,


황후인 풍씨와의 관계 또한 매우 좋았지만,


그 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고,



임신 한 여자와 그녀의 태아의 벡터 일러스트 레이션 디자인 로열티 무료 사진, 그림, 이미지 그리고 스톡포토그래피. Image 82029719.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이귀인이 먼저 임신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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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ㅋㅊㅋ


하지만 일반적인 질투심 넘치는 여인들과 달리 풍황후는 그녀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아들이 태어나자 바로 태자로 세우도록 탁발준에게 건의하였어





























신병주의 '왕으로 산다는 것'] (6) 폐비 윤씨와 어우동의 공통점…성리학 이념 확립 본보기로 여성 처형 - 오피니언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그리고 아들이 태자가 됨과 동시에,


이귀인은 사약을 받고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바로 북위왕조에는 '자귀모사' 제도라고 하여,


아들이 태자로 책봉되면 그 어머니를 죽이는 제도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이귀인은 아들 하나를 남기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지


锦绣未央》结局为什么不明确拓跋弘为李未央亲生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그리고 이렇게 생모인 이귀인은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그 아들 탁발홍은 풍태후의 손으로 양육 되었는데,


18岁就当了太上皇,拓跋弘为何还被母亲冯太后毒死- 每日头条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상술하였듯이 465년 탁발준이 사망함으로서,


그녀는 태후의 직위에 오르게 되었어


* 사망할 당시 탁발준의 나이는 25세였으며, 즉위한 태자 탁발홍의 나이는 불과 11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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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태후


하지만 풍태후가 바로 어린 황제를 끼고 실권을 장악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어


북위의 '자귀모사제도'는 태후와 외척의 황제를 끼고 전횡하는 것을 막도록 고안된 '극단적' 제도인만큼,


황제의 친모는 죽어서 '황태후'가 되었고,


황제를 길러준 여인은 그저 '보태후'가 될 수 있을 뿐 이었는데,


이 '보태후'는 당연히 그 어떠한 실권도 허용되지 않는 명예직에 불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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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조정의 실권은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시중 겸 거기대장군 을혼이 잡게 되었는데,


이 '거기'대장군님은 야심이 대단했던 인물로,


어린황제가 등극해자,


본인이 직접 제위에 오르려는 야심을 드러내어,


상서 양보년과 평양공 가애인, 평원왕 욱려 등을 죽이고,


어린 황제를 겁박하여 승상의 자리에 오르는 등 찬탈을 위한 준비에 여념 없었으나,


싹둑싹둑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풍태후는 탁발비, 가수, 고윤 등과 연합하여 을혼의 집을 급습하여 그 모가지를 싹둑함으로서,


북위 황실을 지켜내는 대공을 세웠지


北魏冯太后为什么没生孩子揭冯太后的男宠史_野史趣闻_炫历史网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그리고 조정의 권력은 이제 자연스럽게 풍태후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어


이로써 북위왕조가 자귀모사제도 같은 극단적인 제도를 통해서까지 막으려 했던,


'여성'의 통치시대가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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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녀는 권력에 큰 욕심이 없다는 듯,


헌문제가 아들을 낳자 손자의 양육에 전념하겠다며,


권력을 내려 놓았어(물론 이때도 태자의 생모는 살해 됨)


* 이는 탁발홍의 측근세력이 차츰 성장함에 따라 이뤄진 조치이기도 했어


馮太后:14歲當上皇后,23歲當上皇太后,堪稱傳奇- ITW01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하지만 그녀는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하야의 이유인,


손자의 양육에만 집중하지 않았는데,


태후라고는 하지만 아직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혁 이라는 젊고 잘생긴 청년과 '야스'를 즐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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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어머니의 이러한 행동을 참지 못했던 탁발홍은 그녀의 애인이었던,


이혁을 주살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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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탁발홍의 입장에서 이것은 큰 실수가 되고 말았어.


표먼적으로 그녀는 물러나 있었지만,


북위조정에는 여전히 태후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애인의 죽음을 계기로 이 '어머니'는 정치적으로도 각성하여 '아들'을 거세게 몰아붙혔고,


결국 탁발홍은 불과 18세의 나이로 재위에서 퇴위하여 태상황이 되어야했어


스크랩] 원(탁발)씨 황제들 초상화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물론 선대 명군들의 피를 이어받은 탁발홍 또한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어


그는 물러나서도 태상황의 자격으로 수시로 조서를 내리고,


군을 소집하여 전쟁터에 출정하기도 하였는데,


Image result for 독극물 황제의 인성이 20인 경우 생기는 일.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하지만 그의 이러한 당찬 행보는 결국 양어머니에 의한 '독살 엔딩'으로 그 끝이 나고 말았지


* 헌문제에 암살에 대한 반발 또한 물론 있었으나, 그들의 모의는 사전에 누설되었고, 이로 인해 수천명의 사람들의 화를 입고 살해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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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권


헌문제는 아들 효문제를 남기고 떠났으나,


어린 효문제는 말 그대로 허수아비 황제가 되었는데,


풍태후는 이 의붓손자를 엄동설한에 옷 한 한겹만 입혀서 냉방에 가둔 이후 3일 동이나 먹을 것을 주지 않기도 하였으며(이건 그냥 아동학대인데 ㄷㄷㄷ),


효문제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게 한 뒤 조금만 거슬리는 보고가 있어도 직접 매를 들고 때리기까지 하였어


효문제 개 안습....

* 피의 숙청 또한 계속 되었는데, 효문제의 부황인 헌문제의 측근들이 연이어 처형당하고, 이 숙청의 과정에서 효문제의 친어미니에 친정집 또한 대역죄의 누명을 쓰고 말 그대로 멸문지화를 당해버렸어


馮太后毒殺獻文帝後找了幾個情人,又大刀闊斧地改革- iFuun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의붓손자는 잡으면서,


본인은 잘생긴 젊은 남자들을 침소로 불러 인생을 즐겼지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이면


자 여기까지만 보면,


풍태후는 흔한 역사 속 악녀가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북위의 정국을 안정시켰던,


통치자로서,


손자 효문제를 진심으로 아끼는 면 또한 있어서,


자신의 정사를 돌 볼때 어린 효문제를 꼭 불러 똑똑히 보고 배우도록 하였으며,


북방 선비족 군주인 그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유교경전과 제자백가에 두루 능통한 지식인 황제로 성장하게 만들었어(괴롬힘 그 자체가 목적인 학대는 아니고, 스카이 캐슬 이었던걸로...)


+ 풍태후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역사서에 악명을 남긴 측천무후나 천추태후 등의 남총과 달리 이 풍태후가 거느린 남총이었던 왕예와 이충은 능력(그 능력만을 말하는게 아님)있고 청렴한 인물들이었으며, 이는 타고난 정치가였던 그녀가 애인들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단순히 외모와 스킬 뿐만 아니라 그 능력과 인품을 보았으며, 어쩌면 젊은 태후는 이러한 인재들이 자신과 몸을 섞게 함으로서 보다 더 확실한 동맹관계로 묶어놓자는 정치적 목적으로 그들에 접근하였던 것도 아닌가 싶어(어쨋든 권력자의 사생활이 국가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으므로 이 부분 킹정!)


北魏馮太后24歲守寡,南朝皇帝:派壯男當使節,兩國果然實現和平| 天天要聞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풍태후의 업적


풍태후의 역사적 존재의의는 단순한 정국안정이나, 손자를 명군으로 양육한 것에만 있지 않았어


풍태후는 도량형을 통일하고,


지방호족 중심의 북위의 사회질서를 농민들을 국가가 직접 지배하는 형태의 '삼장제'로 개혁하였으며,


봉록제와 균전제라는 중요한 개혁을 성사 시켰는데,


북방 선비족 왕조였던 북위는 유목민적 관습의 영향이 그때까지 내려와,


관료들에게 따로 봉급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회체계는 전시에는 적국의 약탈을 통하여 재화, 분배가 가능하지만,


평화시에는 그 약탈의 대상이 '백성'이 되고 그들에 대한  '수탈'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기에,


이 선비족 왕조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였고,


풍태후가 바로 그 일을 해냈어


그녀는 또한 관료들의 임기를 공적에 따라 나눈 뒤(그전에는 공적과 무관하게 무조건 임기 6년이었으나, 풍태후는 이에 대해서 '성과제'를 도입한 것이지),


관료들에게 봉록을 지급 하였는데,


이렇게 봉록을 지급하는 대신 방치되다 싶이 하던 부정부패에 대한 처벌을 매우 강화하여,


비단 1필만 받아도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실제로도 그녀는 명태조처럼 부패한 관리들의 숙청에 심혐을 기울여(풍태후의 숙청작업은 개인의 권력강화의 목적 또한 있었지만 국가의 중앙집권화와 부패척결의 목적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야),


백성들을 탐관의 횡포로부터 보호 하였지


균전제의 실시 역시 중요한 개혁이었는데,


이 균전제는 15세에서 70세까지의 성인에에게 일정한 넓이의 토지를 지급하고, 70세가 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는 제도였는데,


이 균전제의 시행은 오랜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국가의 재정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어

* 풍태후는 단순히 토지의 분배에만 신경쓴 것이 아니라 한족적인 균분사상과 유목민족의 기능, 능력에 따라 특정생산 방식에 종사하는 방식을 융합하여 이 분배된 토지를 피정복민들의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당하여 북위는 곡물의 확보 뿐만 아니라 비단, 포백, 유, 대추 등도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어


풍태후는 또한 한족출신의 선비들(풍태후 또한 선비족 왕조의 태후였지만, 본인은 혈통적으로 한족이었어- 물론 어린 시절부터 선비족 왕실에 노비의 신분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성장배경에 있어서 한족적 문화와는 무관하게 자랐지만) 또한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을뿐만 아니라,


한족관리들의 '선진적 제도'에 대한 유용한 조언들을 받아들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위의 정책들로 인한 효과(재정의 건실화 등)를 다시 백성들에게 베풀었어(나라에 가뭄이 닥치자 궁궐에 있던 많은 그릇, 의복, 비단을 백성들의 구휼에 사용하였던 것 또한 그녀에 관한 미담으로 후대에 전해져)


北魏馮太后》:《北魏馮太后》是2006年由衛翰韜、張國慶導演,吳倩蓮、 -百科知識中文網 남총들을 거느리고 의붓아들을 독살한 여성 권력자


대 고구려 외교


풍태후에게 고구려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나라'에 해당하였는데,


하지만 풍태후는 이러한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고 하는 대신 고구려에 대하여 실용적으로 접근하였어

* 하기는 그녀의 남편부터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손자였으니...


그녀는 장수왕에게 양국간 혼인을 제의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장수왕에 의하여 거부되었어


인간적인 측면에서 봐도 왕실의 귀한여인을,


자기가 죽인사람의 손녀이자.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무서운 여자에게 시집살이 시키고 싶지 않은 것도 당연하거니와(지옥문이 보인다!!!),


이전에 북위는 북량과 혼인을 맺어 놓고 북량을 멸망시킨적이 있기 때문에,


장수왕은 이러한 혼인제안이 인질+고구려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시도로 간주하여 불쾌히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이는 풍태후가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이용한 것도 있어


과거 왕조국가에서 태후가 왕실의 혼인을 주선하는 것은,


국왕에 대한 충성에 의미와 동시에 태후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특히 당대의 강국 중 하나인 고구려와의 혼인관계의 성사여부는 조야의 주목을 그것을 추진하는 태후에게 쏠리게 하기에 충분하였지


풍태후는 장수왕이 싫다는데도 집요하게 고구려와 혼인문제를 가지고 끌다가, 자신의 손으로 그 혼인에 당사자가 되어야 할 의붓아들을 없애버렸어


결론적으로 풍태후는 사적인 원한에도 불구하고 그 집권기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를 맺었는데,


자신의 집권기간 고구려와의 교역량을 두배로 늘리도록 하고,


백제와 물길이 북위까지 삼자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치자는 제안 또한 거부하였어

* 북위도 강국 이었지만 고구려의 세력 또한 당시 매우 강성하였던걸 감안하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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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평가


풍태후는 490년 고구려의 장수왕 보다 1년 빨리 사망하는데(진짜 장수왕 오래산다 ㄷㄷㄷ)


향년 48세였으며,


그녀의 유언은 자신의 장례식을 검소히 치뤄달라는 것이었는데,


효문제는 이 유언을 지키지 않아서,

('스카이 캐슬' 당한 손자의 반항 ㄷㄷㄷ)


그녀의 장례를 '황제의 예'로 성대하게 치뤘으며,


북위의 백성들 또한 자신들에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선사해 준 그녀를 위하여,


슬퍼하며 모여들어 눈물을 흘렸다고 해


멸망한 나라의 황실의 후손으로 태어나,


노비로 전락하고,


그 원수의 자손과 혼인하여 황후에 자리에 올랐으며,


자신의 치마폭에 일세를 담아 풍미했던 여걸 풍태후


난세의 승리자로서 비록 그녀의 손에 또한 적지 않은 피가 묻어 있어서,


도덕적 비난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전근대 군주제 사회의 특성을 감안하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백성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지도자가 진정 훌륭한 지도자라고 본다면,


그녀는 당태종 이세민, 명태조 주원장, 조선 태종 이방원 등에 비할 수 있을 것이며,


역시 지배층 내에서 숙청을 감행하여 위의 남성 통치자들과 달리 악녀로 기억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백성들에게 좋은 군주였던 여태후와 측천무후에도 비교할 수 있을꺼야


결론적으로는 그녀는 북위라는 한 왕조를 반석위에 올렸을 뿐 아니라,

* 효문제는 그녀의 장례에 관한 유언은 지키지 않았지만, 그녀의 개혁정책은 충실히 계승, 발전시켰으며, 풍태후 때의 기반을 바탕으로 이뤄진 효문제 시절 북위의 '한화' 정책은 중국사 전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아


후대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녀가 처음 실시한 균전제가 이후 300년간 중국왕조들에서 사용되었던 것을 비롯하여,


그녀의 개혁정책들은 북위왕조를 넘어서 후대의 통일왕조(수당)들의 정책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야


+ 풍태후와 효문제의 관계와 관련하여, 효문제가 사실은 그녀의 의붓아들 헌문제의 아들이 아닌 그녀와 그 애인이었던 이혁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이라는 설 또한 있는데, 이에 관한 여러 정황증거들을 소개하면, 1. 권력의 화신이던 그녀가 친아들도 아닌 의붓손자를 돌보기 위해 갑자기 하야 했겠냐는 것 2. 헌문제 입장에서 차라리 그녀가 남첩이랑 놀아나는게 자기 권력을 확보하기에 더 유리할텐데 굳이 이혁을 처형시켜버린 점(즉 이혁의 태후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 등 도저히 그가 묵과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3. 헌문제는 그녀의 강압에 밀려 황제의 위에서 퇴위할때 자신의 '아들'인 효문제에게 양위를 한사코 거부하고 숙부에게 양위 하겠다고 주장했고(- 장성한 황족에게 양위해야 풍태후와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석 하기도 하는데...) 풍태후가 이를 결사반대하여 효문제에게 황위가 전달된 점 4. 효문제에게 그녀는 스카이 캐슬식 교육은 둘째치고, 외조부의 죽음을 포함하여 외갓집을 멸문지화 시킨 것도 그렇다치고, 심지어 그의 친아버지를 죽인 인물인데... 효문제가 그녀의 죽음에 대해 굉장히 애통해했고, 정치적으로도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그녀에 대한 격하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고대 이집트에서 의붓어머니-의붓아들 관계였던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스 3세의 수천년 투트모세스의 하트셉수스트 격하 떡밥은 물론 중국사에 있어서 순치제가 도르곤을 '부관참시'한 일 등에 비교하여) 등의 이유로 사실은 효문제가 그녀의 친아들이며, 불륜(당대 기준으로!)으로 아이를 낳은 풍태후가 효문제를 억지로 헌문제의 족보에 올려 놓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부 '정황증거'들일뿐이니... 그냥 흥미용 떡밥 정도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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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일세의 여걸' 풍태후에 대한 소개글을 마칠게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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