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파키스탄의 물가상승률은 13.37%로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파르다. 외환보유고는 103억 달러(약 13조2400억원)로, 두 달간 수입 품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면 끝날 정도에 불과하다.
스리랑카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역시 중국의 인프라 개발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달러(약 65조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를 선언했다.
달러 대비 루피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며, 증시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셰바즈 샤리프 신임 총리가 시험대에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파키스탄 의회는 지난달 11일 임란 칸 전 총리를 불신임 퇴진시켰다. 이어 당시 야당(파키스탄무슬림리그) 대표였던 샤리프 총리가 내년 8월까지 남은 임기를 보장받아 취임했다.
샤리프 총리는 1년여 임기 동안 정부가 2019년 7월부터 해온 IMF 협상을 매듭짓고, 칸 전 총리가 ‘고육지책’으로 실시해온 연료 보조금을 폐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 최고위원은 블룸버그에 “오는 15일 유가를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샤리프 총리는 가솔린·디젤 가격 인상 관련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연료 보조금 폐지는 칸 전 총리가 시위대를 결집할 구실이 되고 있다. 칸 전 총리는 6월까지 연료 보조금 3000억 루피 이상을 지급해 유가 인상 폭을 제한하려 했었다.정부의 결정을 앞두고 칸 전 총리는 200만 명의 시민과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행진하며 즉각 선거를 다시 열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샤리프 총리 역시 연료 보조금 폐지를 피하고 싶어 했다. 미프타 이스마일 재무장관은 공개적으로 연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샤리프 총리는 이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샤리프 총리는 지금까진 국민에게 포퓰리즘적인 조치들을 거론해 왔지만, 이제 IMF와의 협상을 앞두고 있어 불가피한 선택에 직면했다.
파키스탄의 디폴트 위험 관련 보험 비용이 최근 몇 주간 급등한 상황에서 IMF의 대출 프로그램을 재개시켜야 해 부담이 크다. IMF는 “이달 하반기 샤리프 정부와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며 “샤리프 정부는 거시경제를 안정시키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시프 알리 쿠레시 옵티머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회장은 “샤리프 총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정치적 고려 때문에 정부의 힘든 경제적 결정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협상과 결정을 앞두고 샤리프 총리와 이스마일 재무장관 등 내각 주요 인사들은 이번 주중 영국으로 가서 샤리프 총리의 형이자 세 차례 파키스탄 총리를 지낸 나와즈 샤리프를 만나 연료 가격 인상 관련 협의를 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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